뉴 노멀 시대, 커리어 전문가란?
글쓴이 : 김웅태            작성일 : 2021-02-02
우리사회에서 ‘커리어’가 보통명사로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기능이 크게 발전한 것이 비교적 근래이기도 하지만 검색엔진이 ‘커리어’를 인식하게 된 것도 불과 십 여년에 불과하다. 또한 ‘커리어’가 매우 친숙하게 사용되는 만큼 명시적 및 암묵적 의미 또한 대부분의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의미를 제시하는데 어려워 한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또는 다소 협소하게 중진국 이상의 국가에서 커리어는 생애 전반에 걸쳐 삶의 모든 영역과 직, 간접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심지어 커리어와 삶은 하나이며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고도 한다. 커리어는 또한 지역, 시대, 문화, 경제 등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정의와 해석이 내려지는 맥락적이며 역동적인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커리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나아갈 길’을 뜻하는 ‘진로’로 표기한다. 이는 어원과도 일치하며 성장과정에 있는 학령기 및 청소년이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행동적, 정서적 및 인지적인 제반 활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는 주로 직업을 갖고 있는 성인이 직업 미래를 준비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뜻하며, 역시 잘 알려진 용어인 ‘경력’으로 표현한다. 경력은 ‘지나간’ 및 ‘쌓는다’는 뜻을 가진 한자로 표기하는데, 사실상 이는 오늘날의 현실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하며 지나치게 낡은 관점이다. 근본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일반적으로 ‘계획’이 목표를 수립하고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성공으로 평가받더라도 인간의 삶은 결코 이러한 방식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즉, ‘쌓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커리어 개발이 성공적이라도 평할 수는 없다.

‘진로’와 ‘경력’이 현상적으로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별개의 개념처럼 사용되는 것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상이 다르다는 인식에 기인하는데, 이는 공급자의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한데 따른 오류이다. 보다 깊은 원인은 현실세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제안된 개념을 여전히 비판 없이 사용하는데 있다.

전통적인 커리어 이론의 상당수가 조직관점에서 커리어를 정의했다. 즉 "상위 계층으로 배열된 일련의 관련 직업으로 정의하고, 이를 통해 사람이 순서대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순서로 이동한다(Wilensky, 1961)” 또는 “상호 관련된 훈련과 업무 경험을 통해 개인이 더 큰 숙달과 책임을 요구하고 증가하는 재정적 수익을 제공하는 일련의 직위를 통해 위로 승진한다(Perlmutter & Hall, 1992)” 등의 정의가 있었으며, 비교적 근래에는 “진화하는 일련의 업무 경험을 통해 획득한 기술, 전문성 및 관계 네트워크에 구현 된 정보 및 지식 등을 축적하는 지식저장소(Bird, Hugh, Arthur, 1996)”라는 정의도 제시 되었다. 우리사회의 맥락을 충분히 살펴보기 어려웠던 과거에 일부 학자가 위의 정의를 원용하여 ‘직업생활을 통하여’는 ‘지나간’의 뜻을 지닌 경(經)과 ‘쌓는다’는 뜻을 가진 력(歷)을 사용한 것이 현재까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술과 지식의 축적, 고용안정을 대신하여 ‘고용가능성’이 더 없이 강조되고 있으며, 커리어가 안정된 상황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 및 조직 전반에 걸쳐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이며, 고용 맥락이라는 제한된 인식으로부터 최소한 ‘직업과 개인 생활의 통합’으로 확장하여 모든 근로자와 모든 일련의 작업 경험을 포괄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상 오늘날의 명시적 및 암묵적 관점에서는 커리어의 정의에 직업세계나 피고용자 만을 제한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각 개인마다 커리어에 대한 정의를 달리할 수 있지만 타인의 삶과 커리어 개발을 돕는 전문가는 최소한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토대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간혹 자신의 역할, 특히 취업/재취업 영역에 과잉 몰입된 활동가로부터 용어의 정의가 중요치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로서 자신의 역할과 역할책임을 규정하는 근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이후의 모든 활동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모든 용어와 단어는 개념을 포함한다. 그리고 개념은 사물, 현상 등의 공통적인 속성을 나타내므로 단순히 용어 이해에 대한 문제를 넘어 전문가로서,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와도 직결된다. 흔히 생존을 위하여, 진입장벽이 낮기에 커리어 활동가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사람도 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커리어 활동가의 길을 선택한 많은 사람 가운데 이 길을 장기간 지속하는 비율이 낮은 것은 궁극적으로 이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편 커리어 개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과거에 비하여 활동가의 수뿐만 아니라 비교적 장기간 활동하고 있는 분들도 많아졌다.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지만 동시에 염려도 커졌다. (글을 이어가기 전에 이들을 비판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주지하다시피 커리어 활동가는 타인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며, 이를 위하여 타인의 삶에 직접, 간접적으로 개입하다. 단지 수입이 목적인 여타의 직업과는 많은 점에서 다를 수 밖에 없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행위로 인해 매우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유사한 속성의 직업이 높은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것과 동일하다.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은 크게 보아 고객을 보호하며 동시에 전문가로서의 성장을 돕는다. 전문가로서의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은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근본적인 관련이 없다. 어떠한 배경에서 커리어 활동가의 길을 선택하였든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었다면 고객, 자신, 우리사회 모두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백발이 되었다고 해서 지혜가 저절로 발달되지 않듯이 단지 오래 동안 활동했다고 커리어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

Ph.D., CDF-I, GCDF, MCDS, Supervi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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