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든 전업 농사이든 재배할 작물을 선정할 때는 투입해야 할 노력과 기대효익을 고려한다.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생애계획이 일반적인 계획과는 크게 다르지만 이때도 계획에 따른 효익을 염두에 둔다.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국면을 계획할 수는 없지만, 전업농이 농사를 통한 수입을 기대하고 텃밭 농사에서 즐거움을 기대하듯이 삶을 계획하며 기대하는 효익이나 목적은 가능한 분명히 해야 한다.
만족과 불만족이 독립된 개념이듯 삶에서 염려를 해소하는 것과 행복을 증진하는 것도 독립 개념이다. 흔히 빈곤, 건강, 고독 등의 염려를 줄일수록 행복해진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행복에 관한 수 많은 실증연구는 상호 관련성이 낮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텃밭 농사에서는 수입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경제성과 생산성에 대해 한 치도 고려하지 않기에 주관적 지표인 즐거움만을 추구하게 된다. 텃밭에서 획득하는 주관적 지표를 굳이 객관화된 수치로 바꿀 때 터무니 없이 높은 숫자가 나올 수 있는 것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에서 느끼는 염려의 대부분은 객관적 지표이나 행복은 철저하게 주관적 지표이다.
‘삶을 계획하기’의 수준을 정의한다면, 가장 낮은 수준인 ‘일상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에서부터 가장 높은 수준인 ‘전생애에 걸쳐 자신의 모든 자원을 망라하는 생애를 계획’하는 수준에 이른다. 이때 낮은 수준의 생애계획일수록 객관적 지표로 계획의 성공 여부가 평가되며, 높은 수준의 생애계획일수록 주관적 지표로 평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객관적 지표의 총량이 높더라도 주관적 지표인 행복이 높아질 수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삶을 계획하며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서,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기 위해서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부는 결과만 상상하며 작물을 선택하지 않는다. 재배기간, 투입해야 할 수고, 재배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 판매가격, 예상되는 장애,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 등을 고려하여 재배할 작물을 선택한다. 전업농에 비할 바는 아니나 텃밭 농사에서도 경험이 쌓이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하게 된다. 즉 작물의 선택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소비하여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있은 후에 내려진다 - 물론 풍부한 자산을 갖고 있더라도 예상치 못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기 어렵다. 삶을 계획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 모두를 구조화하는 행위이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이 보유한 생애자산을 소비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로 살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애자산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삶을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거나 주관적인 생애자산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성장에 더욱 도움이 된다. 역으로 보면 주관적 생애자산을 적게 평가할수록 삶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파악해보면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유용한 생애자산을 예상 외로 많이 발견할 수 있으며, 이 모든 자산을 소비하는 방식을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 또는 생활방식이라 부른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미래에 필요한 자산 간의 차이를 파악하고, 이 차이를 해소하려는 노력도 삶을 계획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계획하는 본질적인 목적이나 동기가 ‘더욱 행복한 삶’에 있다면, 현재와 미래에 자신의 ‘생애자산을 소비하는 방식 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보다 소비 방식의 변화에 대처하고 관리하는 데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한다. 생애계획은 우리가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한 도구적 특성도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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