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동기가 이미 지난 해에 정년으로 퇴직했다. 경영자, 선생, 프리랜서 등등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60세 기점으로 은퇴 과정이 가속화되기는 매 한가지로 느껴진다. 오늘날의 60대는 과거와 많은 면에서 다르기에 정년퇴직이든 은퇴이든 스스로 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용도가 다했음을 획일적으로 통고하는 단절하는 방식에 젖어 있다.
사회적으로 ‘쓸모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잣대를 대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이 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형태로 사회활동을 지속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치게 조직의 시각에서보거나 관습적인 선택을 따르는 것이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95세에 완전히 은퇴하기를 꿈꾼다. ‘가능하면 늦게까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닌 필자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과 기대이며, 이 꿈의 실현에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대비하고 대처하고 있다. 직업유형으로 보면 경영자이자 프리랜서(독립 활동가)이기에 사회적인 구속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내면이 주장하는 역할인 상담자, 교수자, 커리어개발전도자 등의 역할은 언제 그 수명이 다 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늘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사회적 역할에서 쓸모 없음(un-usefulness)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지 않는다. 조직이 주는 혜택에 지나치게 의존하였거나, 세상과 조직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역할이나 역량의 변화를 준비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쓸모(usefulness)에 대한 과신이 진실에 눈을 감게 한 것이다. 사회적 역할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동시에 ‘인생에서의3대 염려’의 하나이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고독’과 직결된다. 또한 자기결정성의 핵심 요인인 자율성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빈곤과 건강이3대 염려의 나머지 두 가지이나 이것들 조차 고독을 해소해 주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역할 만큼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최소 단위의 사회인 가족에서부터 글로벌에 이르기까지 ‘내가 역할을 지속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든 있을 것’이라는 기대나 신념은 마땅히 권장되어야 하나 이를 뒤 받침 해주는 자원이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단순히 어떠한 역할을 갖고 있다는 것 이상을 원하는 경우에는 자원이든 역량이든 상당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비록 정년퇴직 연령을 훨씬 지났더라도.
경영학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인 VRINE(Valuable(가치), Rare(희소), Inimitable(복제), Non-substitutable(대체), Exploitable(조직))을 일부 변형하여 개인의 삶이나 커리어에 적용해보자. 고객이나 사회에 대한 자신의 기여가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결과를 만들어야 할까? 자신의 역량이나 보유한 자원이 여전히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잠재적인 경쟁자나 다른 사람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장점이나 역량을 지속적으로 보유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 권위(Authority)나 자신의 방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활동이 소속된 집단이나 사회에 여전히 도움이 되는 방책은 무엇일까? 등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조직에서 핵심인재나 수퍼 엘리트가 되거나 뛰어난 사회적 인물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다섯 가지 관점 가운데 한 가지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은퇴이든 정년퇴직이든 사건의 발생 이후에 맞이하는 삶은 많은 장면에서 빠르게 달라진다. 삶의 전환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중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굳이 나이와 ‘라떼는…’ 등을 들먹이지 않아도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최근에 작고하신 송해선생이 이를 잘 보여 주셨다.
현재의 장년은 부모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불과 10년 전의 초기 베이비 부머와도 크게 다르다. 자신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Ph.D., CDF-I, GCDF, MCDS, Supervis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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