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중 10회기 이상 상담을 진행 한 끝에 리서치 회사에 입사한 여대생이 있었다.
본인이 기대했던 것 보다는 다소 규모가 작았지만, 몇 년 경력을 쌓아 좀더 탄탄한 회사로 이직하리라는
희망을 보이며 1달 전 마지막 상담을 마친 학생이었다. 입사 1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여학생에게서
커피 한잔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둘 다 직장인이었으므로 어렵게 퇴근 이후로 시간 약속을 잡고 을지로의 까페에서 학생을 만나게 됐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가우면서도 편안한 자리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퇴근 후 무척 피곤 할 텐데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6개월 전 첫 상담에서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한 인상을 줬던 학생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밝아지고
마음을 서서히 열어가던 친구였다. 원하는 분야에 취업해 밝은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 흐뭇한 기억이
남는 친구였기에 그 궁금증이 더욱 컸다.
직속 상관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2~3주 지속되는 야근 등 최근 입사한 회사에 대한 적응으로 고민했고
결국 회사에 사직까지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1달 만에 나오는 것이 걱정이 됐다. 또한 마음 한편으로는 사회생활
새내기로서 괜찮은 일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오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다.
다음 구직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덜컥 퇴사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이러한 걱정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들을
자꾸만 더 묻게 됐다.
학생은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고 있었지만, 말수가 점점 줄고 목소리도
작아지는 것 같았다. 처음 까페로 들어섰을 때의 반가움과 친밀함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반응을 살피다 아주 조심스럽게 학생에게 내가
느낀 점을 얘기했다. 학생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고, 그 대답을 듣고 망치를 얻어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학생은 1달 동안 너무 힘들었고, 나를 만나 힘들었던 시간들도 터놓고 말하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오늘 하루 회사 일과를 견뎌냈다고 했다. 그런데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을 계속 받다 보니 아무런
계획도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 자괴감이 들고 자꾸만 말을 하기가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학생의 태도가 들어설 때보다 소극적으로 바뀐 것은 그 친구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해 주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진로문제를 끌고가려 했던 일방적인 나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학생이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마음의 문을 닫는 건 너무 쉽고 빨랐다.
진심을 담아 내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점을 사과 했고,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 여전히 나는 학생 앞에 앉아 있는 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상담을 시작할 때 라포 형성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또 첫 만남에서는 이 점에 항상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라포만 형성되면’ 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듯 처음 형성된 라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상담 전체를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라포는 초기 상담만이 아니라 마지막
상담까지도 늘 한결같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 
